앵커 Anchor ; 릴레이 경주의 마지막 주자.

몸시계의 기계 속에 닻 모양을 한 두 개의 이가 톱니바퀴의 이에 맞물려서 그 회전을 제어하는 장치.

 

 

 

  영화 '앵커' '선희와 슬기'에서 임팩트 있는 정미역을 연기했던 배우 '박수연' 양이 주인공 '한주' 역할을 맡았습니다.스포주의한주는 몸이 불편한 동생과 약초를 캐는 할아버지와 살고 있는 고등학교 육상부 소녀입니다. 부모님도 없고 몸이 불편한 동생과 주로 둘이 생활을 하지만, 자기를 후원해주는 사람들과 그 돈을 관리하는 목사님이 있어서 생활에 지장은 없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사고로 위급해지는데, 수술비를 내겠다는 목사님은 사라져 버리고 결국 할아버지 상을 치르게 됩니다. 어린 동생은 할아버지를 보러가자고 보채지만, 차마 한주는 사실을 말하지 못합니다. 운동을 하러 밖에 나간 한주는 목사를 발견하게 되고 따라가지만 놓쳐버렸고, 집에 왔는데 설상가상으로 묶여있던 강아지가 사라지고 동생 영준도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과연 한주는 동생 영준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사실 운동에 관한 영화인줄 알았어요. 첫 장면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한주의 모습이 담겨 있어서, 고등학생 소녀가 육상을 하면서 겪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보다 보면 한주가 마주하는 세계를 다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영화속에서 끊임없이 달립니다. 그녀는 동생 영준이를 찾기 위해 또 다른 마라톤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영준이를 찾아가는 여정들이 달리기와 맞물리면서 영화는 끊임없이 그녀를 따라갑니다.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도와주려 하지 않고, 심지어 한주를 용의자로 보는 과정에서 저는 한주가 사실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습니다. 

 

  하지만 한주는 끈질기게 영준이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달리고 또 달렸죠. 그리고 강아지의 행방을 찾아내는데에 성공을 합니다. 하지만 영준이가 어디있는지는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 한주는 여전히 어딘가에서 영준이를 찾고 있겠죠?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한주처럼 삶의 마라톤을 달리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달릴수록 주변 풍경이 변해가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끊임없이 변해가고 또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것의 연속이지 않나. 근데 이 삶이라는 마라톤이라는게 달리면 달릴수록 어렵고 참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은거 같아요. 아무리 달려도 매순간이 낯선 느낌이라 신선하지만 많이 두렵기도 합니다.

 

  

  오늘 저는 이 영화 리뷰 쓰기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사실.. 블로깅을 다시 시작해서 글을 매일 쓰기 시작한지 지금 2주 정도 밖에 안됐지만, 긴 마라톤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버텨야 하는데, 멘탈 잡기 쉽지 않은거 같아요. 뭐든 꾸준히 하는게 정말 중요하고 끝까지 버티는 게 중요한데, 한주처럼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달려봐야겠어요. 모두들 함께 달려요! 화이팅!

 

 

 

세상은 모르는 일 천지에요.

알고 싶으면 달려야죠.

 

영화 '앵커' 대사 中

 

 

 

 

(사진출처 : 네이버영화)

 

 

 

우리는 인간관계없이 살아 갈 수 있을까?

 

 

  우리는 학교 생활을 시작하면서 대부분 인간관계를 시작합니다. 사실 어린나이에 유치원 가고 초등학교 가면 인간관계라는 개념을 정확히 인지하기 전이기 때문에 뭐랄까 어린나이이지만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어렸을때는 정말 많은 걸 흡수하는 나이이죠. 그렇기 때문에 가족 외의 사람들 특히 '친구'관계에서 우리는 많은 걸 배우기도 하고 흡수하기도 하고 또 다른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생판 모르는 친구들을 학교에서 만나서 적어도 8시간 이상 함께 지내다보면 정말 많은 일들이 생기죠. 그리고 정말 많은 감정들을 느끼기도 합니다. 특히 한창 예민할 나이인 고등학생이 되면 '친구'라는 건 정말 좋은 관계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숙제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들 혹시, 그런 감정 느껴 보셨나요? 남들이 다 친구를 사귀니까 나도 사겨야 한다는 압박감 같은? '선희와 슬기'를 보면서 저는 '선희'의 이런 고민이 짙게 느껴졌습니다. 근데 이런 고민은 누구나 한번 쯤 해봤을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외받지 않으려고 또 반에서 겉돌지 않으려 무리를 만들기도 하고 혹은 무리에 들어가려고 무던히 애를 쓰기도 하죠. 그래서 같이 밥먹고 어울리고 얘기하고 놀 친구를 만든다는건 어쩌면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합니다. 고등학교 때 사귄친구들이 평생간다고. 어쩌면 이 말은 누군가에게는 해당되는 말이기도 할거에요. 왜냐하면 학교에서 아침부터 저녁 야자까지 하루 종일 12시간 이상을 학교에 붙어 있는 일이 한국에선 흔한 고등학생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고등학교에서의 인간관계가 쉽지 않다고도 말하고 싶기도 합니다. 한창 예민할 나이의 십대 소녀들이 모여있는 그곳에서 마음 맞는 친구 찾는 건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주인공 '선희'는 '정미'의 환심을 사기위해 30만원짜리 엑소 콘서트 티켓을 구매하고 그것을 사촌오빠가 줬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정미'에게 권합니다. 이 이후로 '선희'는 '정미'의 무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지만, '선희'가 선을 넘어 버리죠. 커플링을 스스로 구입해서 남자친구가 있다고 거짓말을 해버립니다. 친구들이 그 사실을 알아버렸다는 것을 우연히 듣고서는 '선희'는 본인의 커플링을 '정미'의 가방속에 넣습니다. 이후 선생님이 반 아이들 전부의 소지품 검사를 실시하는데 '정미'의 가방속에서 임신테스트기가 나옵니다. 이후로 '정미'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선희'는 '정미'를 방문하지만 만나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밖에 나온 '선희'는 '정미'의 자살 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선희'는 죄책감에 시달려 집을 나오게 되고 자살시도를 합니다만 실패하고 보육원에서 '슬기'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과연 그녀는 새로운 삶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요?

 

 

네이버 영화

 

십대의 소녀는 아직 다 성장하지 않은 나이입니다. 친구에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나이이며,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 해 볼 수도 있는 나이이죠. '선희'는 아직 자아가 완벽하게 성립되지 않은 나이이고 또 본인의 '존재감'을 다른 사람한테 찾으려고 하는 불완전함도 지녔습니다. 그렇기에 '선희'는 거짓말로 친구들의 환심을 사기도 했지만, 거짓말로 인해 친구를 잃게되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슬기'라는 이름으로 다시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된 '선희'는, 이번엔 환심을 사기위해 콘서트 티켓을 사지도 않으며 누군가에게 매점에 가자고 조르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혼자 밥을 먹는 용기도 냅니다. 그녀가 이렇게 변해 가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녀가 드디어 주체성을 찾고 이제는 조금은 행복해지려나 보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정체는 탄로나고 그녀는 그렇게 홀로 떠납니다. 그리고 차안에서 어떤 아줌마를 만나게 되죠. 말이 많은 아줌마는 '선희'에게 이런 저런 말을 시킵니다. 그리고 '선희'는 자기가 사진 작가라고 소개를 합니다. 그리고 새로 사귄 친구 '방울'이라는 이름을 자기 이름이라고 소개하고 영화는 끝이 납니다.

 

 

네이버영화

 

'선희'는 봉사활동을 하러 온 서울 친구를 우연히 보육원에서 만나는데, 그 친구의 말을 유추해보면 성인이 이미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성장은 아무래도 고등학교에 머물러 있었던 거 같아요. 친구에게서 타인에게서 인정 받으려고 하는 그 욕구가 아직도 채워지지 않은 채로 그녀를 가둬놓은 것 같습니다. 그녀가 좀 변하는 것 같아보였던 보육원 생활도 새로운 고등학교 생활도 처음부터 '거짓말'로 시작되었고, 끝끝내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말없이 떠나버리는 행동을 봐도 그녀는 정말 미성숙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에 나와서도 끊임없이 인간관계를 마주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십대 때 겪은 일들이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고 자신감이 될 수도 있고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용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엔 '선희'같은 아이도 '정미'같은 아이도 있을 것이며 또한 '방울'이 같은 아이도 있을 겁니다. 왜 우리의 교과서에는 '인간관계학 개론'같은 과목이 없을까요? 정말 수학처럼 정확한 답도 국어처럼 현명한 답도 찾기 힘든 인간관계.....정확한 답이 있다면.... 과연 어떨까요? 우리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조금은 벗어 날 수 있을까요?

 

한편으론 온전히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남한테서 자기 존재감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이 번뇌도 좀 사라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영화 '선희와 슬기'를 보면서..저의 학창시절을 곱씹어 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혼자 밥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학창시절은 어떠셨나요??

 

 

 

 

(명맥이 비슷한 영화로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을 추천 드립니다. '기생충'의 배우 장혜진님께서 '선희와 슬기' '우리들' 두 영화에 모두 출연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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