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 홀리데이 당시 나는 만으로 10대의 나이였고 어쩌다 알게된 한국 에이젼시를 통해서 고기 공장에 취직 할 수 있게 되었다.

참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때 생애 처음으로 무너질 것 같은 나무로 된 주택에서 쥐들과 거주를 했었고, 옮긴 다른 집에선 엄지 손 크기 만한 바퀴도 봤었다. 곤충이나 동물도 나라 크기에 비례 하는 걸까?

아무튼 고기 공장에 가기 위해선 '큐피버(Q-fever)'라는 발열 방지 주사(?) 같은 것을 맞아야 하는데, 비용이 좀 셌었다. 150-300사이였던 것 같은데, 고기공장에서 일 할려면 무조건 맞아야 한다.

그때 나와 같이 주사를 맞게 된 사람은 총 6명이 였는데,
같은 공장에 가게 될 거란 사실에 나름 친하게 지냈었다.

큐피버를 맡기 위해선 우선 피검사를 해야한다. 맞아야 하는지 맞지 않아도 되는지.
맞지 않아도 되는 경우는 단 1%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피검사를 하고 결과를 알기 위해 병원에 갔다. 가는 도중에 내가 '오늘 주사 안맞는 사람은 100불 이상 아끼는 것이니 그 사람이 술을 쏘자' 라고 말했다.
다들 동의 하였다.
괜히 번거로운 주사도 안맞아도 되고 돈도 아끼니 1%에 드는 사람은 여러모로 행운아였다. 그러니 맥주값 몇푼 정도야. 호주는 술값도 쌌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후 결과를 기다리는데,

OMG....나에게 떨어진 큐피버 면.제.통.보!!!!!
간호사였는지 의사였는지 가물 하지만 아무튼 병원 관계자가 어렸을때 동물이랑 친하게 지냈냐고 물어보고, 같이간 일행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큐피버 면제는 호주인들에게도 신기한 경우이다. 정말 말 그대로 어느 나라 사람이건 단 1%의 사람들만 면제가 가능 하기 때문이다.

내가 극 시골 출신이긴 하지만, 그렇게 가축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였는데 참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주사를 안맞아도 되는 안도감에 기분이 완전 좋아졌다.
그렇게 그날 나는 바베큐 파티에서 술을 담당 하게 되었다.


예전 기억을 추억 하는 지금, 아직도 궁금하다. 어디서 그 항체가 생성 되었는지..

많지 않지만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나에게 호주는 다시 안갈 수도 있겠구나 싶음 나라이다. 고기공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세컨비자가 아직 유효 하지만, 호주에서의 워킹 홀리데이는 어린나이에 정말 자극(?)적이였다. 쎈
시급. 좋은 풍경. 여러나라의 맛있는 음식들. 반면 눈으로 보고 느꼈던 레이시즘. 등등 너무 한국에서의 내 현실과 달라 호주 갔다온 후엔 우울증도 겪었었다.


운이 좋아서 나름 성공적인 워킹 홀리데이를 즐겼다. 공장에선 영어가 많이 늘었고, 돈도 벌었고, 원없이 먹고마셔서 살도 뒤룩뒤룩 쪘었다. 번돈으로 여행도 여기저기 다니고 사람들도 얻었다.


고기공장은 나에게 애증의 기억이다. 다신 돌아 갈 수 없는 추억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매순간 감사하고 현재를 소중히 해야 하는데......



이 음식은 chowmein 쵸우면이라고 불리는 중국식 볶음 국수이다.
이 음식을 처음 접한게 언제인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나에게 이 음식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호주에 있었을때 푸드코트에서 마감시간에 저렴하게 팔던 굵은 가락의 태국식 쵸우면은 날 살찌게 만들어주었다. 참 느끼 했는데도 신라면에 최적화된 입맛에는 낯선 간간하고 약간은 기름진 맛의 볶음 국수였지만, 신기해서 이따금씩 사먹곤 했다. 그때 당시만해도 나는 볶음 국수라는걸 접해보지 못했던 글로벌 시골인이였기 때문이다.


인도 여행 했을 당시 나는 왠만하면 저렴한 현지 음식을 찾아 먹으려고 했었다. 한식을 먹은건 손에 꼽을 정도 였고, 물론 가장 많이 먹은건 탄산음료와 우유맛 나는 과자였다. (너무 더워서 입맛도 없었고 단게 땡겼을뿐)
인도는 다이어트에 제격인 나라임에 분명하다. 살이 빠지는 사람은 봤어도 쪄서 귀국 하는 사람은 거의 못봤다.
나도 그런 이유 중 하나인 물갈이를 몇번 겪었는데, 그 중 하나의 이유는 바로 위에 보는 '쵸면' 때문이였다.

밤새 밤 기차를 타고 뭐하나 제대로 먹은거 없이 실리구리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나는 거기에서 하루 묶고 다음날에 '갱톡'에 가기로 했다.
실리구리에 도착 후 뭐하나 제대로 먹은게 없었고 연착이 하도되어서 밤에 출발 했는데 밤에 도착하여서 뭘 먹어야 할 지도 까마득했다.
그저 과자 몇개와 짜이로 배를 대충 때우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일어나 갱톡에 가는 지프차를 예약하고 시간이 조금 남아서 주린배를 채우기 위해 나섰다. 허름해 보였지만 지저분해보이진 않아서 들어간 곳에서 나는 쵸면을 시켰다. 인도에서 몇번 먹었는데 맛으로는 평타를 쳐서 괜찮겠지 싶어서 시켰다.

그렇게 공복에 굶주린 배에 기름진 국수와 요청한 인도식 고추가 섞이면서 허기를 채워주었다. 하나 더 먹을까 하다가 지프차에서 혹시 구토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지프에 올랐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내가 다니는 도로가 내 엉덩이에 느껴지기를 몇 시간 후 같은 차에 탄 인도인 학생이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길은 포장 비포장의 엇갈림에 산이라 구불구불 내가 토를 안하는게 신기할 정도로 길음 험악했다. 그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도 이내 토를 하기 시작했고, 기사는 잠시 쉬기로했다.
나는 콜라를 하나 사고 볼일을 보기 위해 화장실에 갔다.
간단하게 볼일을 다 보고 나서는데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왔다.
차에서의 긴장이 살짝 풀린 그 찰나의 순간에 내 괄약근도 터져 버린 것이다.
지난 이틀내에 제대로 먹은 것 없는 공복에 기름칠 좀 해준것이 화근이였다.
그렇게 나는 다리가 풀린채 그곳에서 15분을 앉아있었다.
이내 지프기사가 기다리다 지쳐서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급해 졌고 일단 참아 보기로 하고 떠나려는 지프차에 급하게 타고 올랐다.
또 그렇게 내 자신과의 싸움이 있었지만 엉덩이에 생생하게 전해지는 도로의 표면 상황은 나에게 많은 힘이 되 주었다. 그리고 옆에서 토악질을 해대니 의식을 분산 시키기에 충분했다.
또 한번의 휴식. 우리 나라 푸세식의 +100배인 똥냄새 그득하게 끼인 화장실에서 나는 또 울며 겨자먹기(비유가 ...웯)로 일을 치를 수 밖에 없었다.
나의 흔적을 남기다니 .... 역시 나 답다 싶었다. (똥 에피소드가 많음)

그렇게 말로만 듣던 서브웨이가 존재한다는 캥톡에 드디어 도착했다.
내가 내린 곳에서 숙소까지는 꽤 거리가 있어서 그 토악질해댔던 부자와 택시 쉐어를 하였다. 그 후 나는 걸어서 숙소에ㅡ도착했고 눅눅한 인도의 모습을 보았다.
마지막 하나 남은 싸구려 도미토리의 내 침대는 화장실 바로 옆이였고, 축축했던 화장실 옆에서 나는 또 그윽한 암모니아 향과 함께 해야 했다.

그렇게ㅡ나는 3일을 똥병으로 앓았다. 극심한 똥병이였다. 이약 저약 다 먹어 보고 역시 포카리스웨트가 최고였다.
그 이후 나는 쵸면을 한동안 입에 대지 않았다. (먹고 한번 더 걸렸다...)
갱톡은 정말 지금껏 여행했던 인도와 달랐다. 우리와 피부색 생김새도 비슷하고 친절했다. 역시 티벳의 영향. 춥기도 추웠으며 음식이 정말 맛있었고 길거리는 깨끗했다. 공기도 이루 말 할 것 없이 좋았다.

다시 가고싶은 인도의 도시로 내 손가락 5개 안에 든다.
그 이후로 ABC를 등정하기 위해 네팔 포카라에서 먹은 쵸우면도 역시 다음날 등정에 많은 힘(?)이 되어 주었다.
괄약근에 힘을 주면 날 듯이 등산을 할 수 있더라.....라는 슬픈 경험
(모터 엔진의 원리를 몸소 체험)

미친듯한 굽은 길 위를 지프차를 타고 도착한 태국의 '빠이' 에서 나는 첫 음식으로 쵸면(사진)을 먹었다. 참 그때의 실리구리-갱톡 기억도 나면서도 다 먹지는 않았다. 혹시 모를 위기는 .... 잠재워야 했기에.


늘 먹던 음식이여도 새로운 곳에 가면 또 새롭다. 늘 먹던 김치찌개가 다른 나라에 가서 먹으면 그렇게 특별 할 수 없듯이.
여행도 그런 것 같다. 같은 쵸면이라고 해도 같은 쵸면일 수가 없다.

그래서 여행과 음식 삶은 때론 반복적이면서도 때론 새로운 '초면' 인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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