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쿠버를 가기위해서 캐나다 소도시에서 국내선을 이용해 보았다. 공항도 작고 비행기도 작아서 걸어서 타야만 했다.



티켓팅을 할때 자리 번호도 없고 SAG였나 이렇게 딱 쓰고 좌석번호 없는 티켓을 주었다.
저 약자가 확실한건지 기억은 안나지만 대충 뜻은 seat at the gate의 뉘앙스 였음 왜 이런 티켓을 주냐고 물으니 더 좋은 자리를 주기 위해서 라고 말라비틀어진 퀘백코아인듯한 남자 승무원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게 나는 믿어 의심치 않고 기쁜 마음으로 비행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나는 자리를 배정 받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 승무원한테 고맙다며 함박 웃음을 지었는데...
아 ...
화장실 바로 옆자리 맨끝자리 날개 엔진 바로 옆자리.
3박자를 고루 갖춘 나이스한 자리였다.

그래도 혼자 앉으니 그나마 낫겠지......
비행기가 출발하고 나는 진짜 최악의 경험을 했다. 난 소음에 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하지만, 이건 뭔 엔지소리 때문에 귀가 너무 아플지경이였다.
세상 그렇게 3시간 정도 비행하면서 귀막고 엎드려 있는 고행을 해야만 했다. 안그러면 고막이 진짜 터질것 같았다.

거지같은 퀘백코어의 얼굴이 떠올랐다 씨발라먹을놈
가득이나 프랑스 말 쓰는 것들 때문에 짜증나 있었는데 그 승무원은 역시 프랑스 말 쓰는 것들은 ㅈ 같구나를 다시 한번 확인 시켜 주었다.

내 인생 최악의 비행이었다.


좋은 자리를 준다더니 좋은자리를 남에게 다 주고 나한텐 남는 자리를 주었다.

악명높은 제주에어가 이것보다 나쁠까?
한번 경험해서 비교하고 싶어졌다.

에어캐나다를 몇번을 탔지만 최악의 경험을 써본다.
나같은 피해자가 없길 바라며...
에어캐나다는 자국민도 욕하는 서비스를 가지기도 했지만 운 좋으면 또 엄청 좋은 서비스를 받기도 한다.

호불호가 강한 에어캐나다다.

...앞으로 에어캐나다를 타고 캐나다 내를 이동하고 그 비행기가 매우 작다면
절대로 화장실 근처에 앉지 말고!
맨뒤에 앉지 말고!
좌석은 무조건 앞으로 달라고 말해라!
아님 온라인 체크인을 하는게 최고인듯!


내 고막 터지면 니들이 보상을 해줄거냐?

이스타에어가 500배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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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수능'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대학이라는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시험.
미국에는 SAT이 있고 캐나다에는 GED가 있다.


나에게 수능이란 단어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긴장감이란 단어와 동등했다.
지금은 본지 너무 오래 되어서 잊었지만, 요새도 아주 가끔은 악몽으로 수능을 다시 보는 꿈을 꾸곤한다.
누군가가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을 꾸었다고 하는것과 비슷한 느낌일까?
여튼 나는 수능과 담쌓고 고등학교 생활을 하다 문득 고3에 3월 모의고사를 치루면서 공부를 시작한 케이스 였다.

완전 밑바닥이였고 나는 절박했다.
왠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수능을 잘 보지 않으면 루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튀기듯 나는 약 6개월간 하루에 16시간 이상 공부를 했다.

사실 야자를 제대로 해본적이 없어서 고등학교 내내 가장 알차게 시간 보낸건 사실 이 6개월간의 시간이였다.
친구들과 석식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야자를 하고 정말 재미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열심히 살았던 때도 이때인 걸 보면 나는 참 베짱이임에 분명하다.

그렇게 공부에 매진하면서 사회과목 중 하나를 독학하고 관련된 선생님을 괴로히면서 가끔은 심취했던 가수의 새로운 음반을 옥상에 가서 친구와 누워서 별보면서 들었던 노래들과 야자의 공기, 친구들의 집중, 몰래 들었던 라디오, 가끔 시켜먹었던 중국음식, 등등이 어우러져 어느새 수능날이 다가 왔다.


수능날 나는 모교에서 시험을 치뤘고 국어 시간엔 왠지 귀머거리가 된듯 듣기부터 망했던 것 같고, 수학시간은 다 찍고 잤는데 감시 감독 선생님이 자꾸 깨웠다.
그렇게 점심엔 죽을 먹었는지 학교 중식을 먹었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어쨋든 영어 시험과 사회시험을 치뤘다.

그렇게 나는 나왔고 밖에서 가족의 마중을 기다리면서 혹독하게 추웠고 외로웠다. 정말 회색빛과 퍼런빛의 섞임이였다.
정말 추웠다.
수능날은 왜이렇게 추운걸까?
그때 나는 홀가분함 보단 뭔가 내인생 망했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철저하게 혼자였고 외로웠고 그 순간의 고독한 공기.


시간은 흘러 외면했던 현실과 마주했고 나는 깜짝 놀랐다. 운좋으면 대학을 갈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어찌저찌 나는 그 종잇 쪼가리로 대학에 합격했다. 비록 동기들 대부분은 만족 하지 않았지만 나는 어렵사리 합격했고 대학생활이 처음엔 즐거웠다.


그렇게 몇년전만해도 11월이면 시려웠던 내 감정은 시큰둥 해졌지만 수능보고 나서 한동안은 수능 다시 보는 꿈을 자주 꿨었다.

지금은 너무 오래 되어서 기억도 안나지만...
수능 다시보라면 진짜 토나올것 같고 못할 것 같다.

근데 과연 대학이라는게 중요할까?

뭔가 고등학교때 공부 열심히 하면 좋은것 같긴하다.
적어도 그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방법중 하나이니까.
그렇다고 수능을 망친다고해서 인생 망친건 절대로 아니라는거다. 나는 인생이 끝난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그 기억이 소중하기도 하다. 뭔가 매진했다는 느낌이 남았기 때문에.

어디에서 읽었는데
공부를 왜하는지 모르겠고 꿈이 없다면
일단 공부를 해라. 그럼 나중에 공부가 필요한 순간에 공부를 해놓았기에 걱정이 없고 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질 수 있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역시 꿈을 이루는 길 중 하나이다.


공부 열심히 했다면 후회하지 마라.
인생 이제부터 시작이다.

학력중시 사회에 강요당하고 희생당하는 학생들이 정말 불쌍하지만 피하는것보다 당당히 맞서고 나아가는게 났지 않겠나?? 어차피 수능도 경험중에 하나일뿐.

절망하지 말고 20대를 열심히 즐겼으면 좋겠다.


수능 본 모든 고3들 앞으로의 삶을 더욱더 값지게 채워나가길!! 수고하셨습니다.



여름이 훌쩍지나고 겨울 같은 가을이지만 두렵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음식! 바로 닭내장탕이 있었기 때문.
치킨테리안인 나는 닭을 매일 먹다시피 하기에 백숙을 먹는다고 몸이 보신 되는 느낌을 못 받는다.
그래서 검색에 검색을 통해서 '닭내장탕' 이란 음식을 발견 하였다. 닭의 모래집 곱창 닭알 등등이 조합된 닭의 부속물을 팔팔 끓인 닭내장탕.
한입 국묵을 떠먹으니 쐬주 생각이 절로 났지만 운전해야 하므로 패스. 닭 곱창으로 만든 저 장조림도 밥도둑이다. 너무 짜서 다 먹진 못했지만 밥반찬으로는 제격인듯.




너무 늦게 알아버린게 한이 된 닭내장탕!
평소에 절대 흰밥을 입에 대지 않는 내가 흰밥 한공기를 싹싹 긁어 비워냈다. 한뚝배기 더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너무너무 맛있는 닭내장탕! 저 보이는 닭알도 별미다!
Pollo-vegeterian 이고 매일 먹는 닭가슴살에 질렸다면 닭내장탕으로 몸보신 하라고 추천 하고싶다!!

요새 입맛이 뚝떨어졌는데 아 또 먹고싶다ㅠㅠ
한국 가고싶다.



이 음식은 chowmein 쵸우면이라고 불리는 중국식 볶음 국수이다.
이 음식을 처음 접한게 언제인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나에게 이 음식은 애증의 대상이었다.
호주에 있었을때 푸드코트에서 마감시간에 저렴하게 팔던 굵은 가락의 태국식 쵸우면은 날 살찌게 만들어주었다. 참 느끼 했는데도 신라면에 최적화된 입맛에는 낯선 간간하고 약간은 기름진 맛의 볶음 국수였지만, 신기해서 이따금씩 사먹곤 했다. 그때 당시만해도 나는 볶음 국수라는걸 접해보지 못했던 글로벌 시골인이였기 때문이다.


인도 여행 했을 당시 나는 왠만하면 저렴한 현지 음식을 찾아 먹으려고 했었다. 한식을 먹은건 손에 꼽을 정도 였고, 물론 가장 많이 먹은건 탄산음료와 우유맛 나는 과자였다. (너무 더워서 입맛도 없었고 단게 땡겼을뿐)
인도는 다이어트에 제격인 나라임에 분명하다. 살이 빠지는 사람은 봤어도 쪄서 귀국 하는 사람은 거의 못봤다.
나도 그런 이유 중 하나인 물갈이를 몇번 겪었는데, 그 중 하나의 이유는 바로 위에 보는 '쵸면' 때문이였다.

밤새 밤 기차를 타고 뭐하나 제대로 먹은거 없이 실리구리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나는 거기에서 하루 묶고 다음날에 '갱톡'에 가기로 했다.
실리구리에 도착 후 뭐하나 제대로 먹은게 없었고 연착이 하도되어서 밤에 출발 했는데 밤에 도착하여서 뭘 먹어야 할 지도 까마득했다.
그저 과자 몇개와 짜이로 배를 대충 때우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일어나 갱톡에 가는 지프차를 예약하고 시간이 조금 남아서 주린배를 채우기 위해 나섰다. 허름해 보였지만 지저분해보이진 않아서 들어간 곳에서 나는 쵸면을 시켰다. 인도에서 몇번 먹었는데 맛으로는 평타를 쳐서 괜찮겠지 싶어서 시켰다.

그렇게 공복에 굶주린 배에 기름진 국수와 요청한 인도식 고추가 섞이면서 허기를 채워주었다. 하나 더 먹을까 하다가 지프차에서 혹시 구토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지프에 올랐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내가 다니는 도로가 내 엉덩이에 느껴지기를 몇 시간 후 같은 차에 탄 인도인 학생이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길은 포장 비포장의 엇갈림에 산이라 구불구불 내가 토를 안하는게 신기할 정도로 길음 험악했다. 그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도 이내 토를 하기 시작했고, 기사는 잠시 쉬기로했다.
나는 콜라를 하나 사고 볼일을 보기 위해 화장실에 갔다.
간단하게 볼일을 다 보고 나서는데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왔다.
차에서의 긴장이 살짝 풀린 그 찰나의 순간에 내 괄약근도 터져 버린 것이다.
지난 이틀내에 제대로 먹은 것 없는 공복에 기름칠 좀 해준것이 화근이였다.
그렇게 나는 다리가 풀린채 그곳에서 15분을 앉아있었다.
이내 지프기사가 기다리다 지쳐서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급해 졌고 일단 참아 보기로 하고 떠나려는 지프차에 급하게 타고 올랐다.
또 그렇게 내 자신과의 싸움이 있었지만 엉덩이에 생생하게 전해지는 도로의 표면 상황은 나에게 많은 힘이 되 주었다. 그리고 옆에서 토악질을 해대니 의식을 분산 시키기에 충분했다.
또 한번의 휴식. 우리 나라 푸세식의 +100배인 똥냄새 그득하게 끼인 화장실에서 나는 또 울며 겨자먹기(비유가 ...웯)로 일을 치를 수 밖에 없었다.
나의 흔적을 남기다니 .... 역시 나 답다 싶었다. (똥 에피소드가 많음)

그렇게 말로만 듣던 서브웨이가 존재한다는 캥톡에 드디어 도착했다.
내가 내린 곳에서 숙소까지는 꽤 거리가 있어서 그 토악질해댔던 부자와 택시 쉐어를 하였다. 그 후 나는 걸어서 숙소에ㅡ도착했고 눅눅한 인도의 모습을 보았다.
마지막 하나 남은 싸구려 도미토리의 내 침대는 화장실 바로 옆이였고, 축축했던 화장실 옆에서 나는 또 그윽한 암모니아 향과 함께 해야 했다.

그렇게ㅡ나는 3일을 똥병으로 앓았다. 극심한 똥병이였다. 이약 저약 다 먹어 보고 역시 포카리스웨트가 최고였다.
그 이후 나는 쵸면을 한동안 입에 대지 않았다. (먹고 한번 더 걸렸다...)
갱톡은 정말 지금껏 여행했던 인도와 달랐다. 우리와 피부색 생김새도 비슷하고 친절했다. 역시 티벳의 영향. 춥기도 추웠으며 음식이 정말 맛있었고 길거리는 깨끗했다. 공기도 이루 말 할 것 없이 좋았다.

다시 가고싶은 인도의 도시로 내 손가락 5개 안에 든다.
그 이후로 ABC를 등정하기 위해 네팔 포카라에서 먹은 쵸우면도 역시 다음날 등정에 많은 힘(?)이 되어 주었다.
괄약근에 힘을 주면 날 듯이 등산을 할 수 있더라.....라는 슬픈 경험
(모터 엔진의 원리를 몸소 체험)

미친듯한 굽은 길 위를 지프차를 타고 도착한 태국의 '빠이' 에서 나는 첫 음식으로 쵸면(사진)을 먹었다. 참 그때의 실리구리-갱톡 기억도 나면서도 다 먹지는 않았다. 혹시 모를 위기는 .... 잠재워야 했기에.


늘 먹던 음식이여도 새로운 곳에 가면 또 새롭다. 늘 먹던 김치찌개가 다른 나라에 가서 먹으면 그렇게 특별 할 수 없듯이.
여행도 그런 것 같다. 같은 쵸면이라고 해도 같은 쵸면일 수가 없다.

그래서 여행과 음식 삶은 때론 반복적이면서도 때론 새로운 '초면' 인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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